세상을 이해하고 설명하고자 하는 욕구는 세대를 넘나들고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인가보다.
물리를 연구하고 이해하면 세상을 설명할 수 있을것 같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던 김상욱 교수님의 말씀처럼.
수학과 과학에 뛰어났던 아인슈타인도 철학서에 빠져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보니 대학생활 학점이 낮을 수 밖에 없었다는 일화처럼.
나에게도 어린 시절. 기성세대들에 대한 저항심과 이해하지 못할 이기심에 나 혼자라고 느끼고 반항하기 바빴던 십대가 있었다.
나는 나 혼자만의 고민이라 여기고 홀로 서기에 바빴다.
그 때의 나에게 이런 철학서 하나가 주어졌다면 어땠을까 싶다.
너무나도 어려울 것만 같은 책을 이렇게나 재미있게 풀어가는 저자가 있어 한구절, 한구절 담지 않을 수가 없기에 북마크 했던 문장들을 이렇게 두서 없이 남겨본다.
칸트 (1724 - 1804)
머릿말
탈레스는 서양 사상 최초로 자연세계의 근원을 ‘추상적 사고’로 밝혀내고자 한 철학자였다.
철학은 개별자들을 하나하나 연구해서는 이룰 수 없는 학문이다. 개별자를 분류하고 공통점을 뽑아내고 추상하면서 최고의 원리를 알아내려고 노력하는 것이 철학이다. 탈레스는 세계 최초로 자연세계 전체의 근본 원리를 밝힘으로써 세계에 관한 체계적인 사색을 시작했다. 철학이란 그렇게 탄생했다. 먹고사는 데 필요한 셈법, 식량 목록 기록, 범죄자 처벌 등은 이미 기원전 1750년 전 함무라비 법전에도 등장하지만 철학은 기원전 7세기 탈레스에서 비로소 등장했다.
철학의 역사는 형이상학의 역사이다. 철학자들은 세계의 궁극적 근거를 끊임없이 찾아왔다. 플라톤이 전하는 소크라테스 그리고 플라톤은 진리를 추구하면서 보편적인 것, 불변하는 이데아를 추구했다. 이러한 철학의 역사는 신이 세상의 중심에 섰던 서양의 중세를 거치면서도 학문의 궁극적 근거가 되었다. 중세를 벗어나는 데에는 과학기술의 발달이 결정적이었다. 경험론은 과학기술을 신뢰하여 경험 속에서 세계의 궁극적 근거를 찾았다. 이에 반해 합리론은 인간 이성에 대한 확고한 믿음 아래 생득적인 인간의 본유관념에서 세계의 궁극적 근거를 찾았다.
1장. 천체와 물리를 알았던 철학자, 칸트
인간은 이성적 존재이다. 지적 존재인 인간은 태초에 세계에 대한 앎을 갈구했을 것이고, 그 첫 대상은 하늘이 아니었을까. 인간에게 하늘은 종교적 대상이면서 지적 대상이었다. 하늘은 신이 사는 곳이면서 별들이 있는 곳이다. 별들은 주기적인 운동을 한다. 고대인들은 별들을 관찰하여 천문학을 만들었다.
천동설은 생각만큼 매끄럽게 설명되는 천문학적 체계가 아니었다.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은 북극성을 중심으로 일정한 위치를 상대적으로 유지하며 동심원을 그리면서 함께 돌아간다. 그러나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 이 다섯 개의 별은 하늘에서 이리저리 위치를 바꾼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고대인들은 이 별들을 떠돌이별이란 의미의 ‘행성(planet)’이라 이름 붙였다. 행성들은 앞으로 가는 순행운동과 잠깐 뒤로 물러서는 역행운동을 반복하면서 움직인다. 법칙이란 예외가 없어야 한다. 하늘에서 눈에 띄는 별들이 이렇게 법칙 없는 운동을 한다는 건 고대인들에게 불편한 사실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기원전 384~372)는 천동설을 주장했지만 행성들의 운동이 법칙에서 벗어난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천동설을 버리기에는 다른 대안이 없었기에 후세의 학자들이 문제를 해결하리라 믿었다.
코페르니쿠스는 왜 행성이 천체상을 역행하는가, 왜 수성과 금성(내행성) 그리고 화성과 목성, 토성(외행성)이 다른 움직임을 보이는가 하는 물음에서 출발하여 지구의 자전과 공전이라는 지동설에 도달하게 되었다.
세상의 중심이 지구에서 태양으로 바뀌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코페르니쿠스 혁명(Copernicus revolution)이라고 불렀다. 칸트는 자신의 철학적 발상을 이에 빗대 코페르니쿠스적 전환(Kopernikanische Wendung)이라 불렀다. 칸트는 자신의 인식론이 종래의 인식론적 근거를 객관이 아닌 주관으로 바꾸었다는 점에서 이 위대한 천문학적 발상을 끌어들였다.
어두운 밤하늘의 별들은 한쪽 방향으로 일정하게 움직인다. 상식적으로 보면, 나와 땅은 움직이지 않고 하늘이 움직인다. 땅에 발을 붙이고 선 인간은 수천 년 동안 그 하늘을 설명해왔다. 그런데 그 질서를 반대로 설명하는 건 혁명에 가까운 일이다. 내가 발붙인 땅이 움직이고 매일 뜨고 지는 태양을 고정시킨 우주론은 사고의 혁명이다. 칸트 역시 철학적 인식론의 영역에서 자신의 방법을 사고의 혁명이라고 생각했다.
인식론은 쉽게 말해서 ‘무엇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에 대한 철학의 분과이다. 지적 호기심을 가진 인간이 설명하고자 하는 세계는 정말 무궁무진하다. 이 상황을 단순하게 말하면 인간 주관이 객관 세계인 대상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대상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이 너무나 다양해서 저마다 다양한 설명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그나마 철학이 고도화되면서 인간 경험을 중심으로 대상을 설명하는 경험론, 인간의 이성을 중심으로 대상을 설명하는 합리론으로 나누어졌다. 그러나 칸트가 생각하기에 “내용 없는 사상들은 공허하고, 개념 없는 직관들은 맹목적이다.”(B75)
칸트는 인식의 근거를 객관 대상에 두고 경험적으로 설명할 것인가, 이성에 의해 합리적으로 설명할 것인가의 문제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인식의 근거를 경험에만 두지도 않고 이성에 의한 합리적 설명에만 두지도 않았다. 남들이 경험이냐 이성이냐의 시시비비를 가릴 때 제3의 길을 잡았다. 세상의 중심을 주관에 두고 경험과 이성을 종합해보겠다는 것이다. 아니 대상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데 근거를 ‘나’에 두겠다? 이건 혁명이 아닌가! 그래서 칸트 스스로 자신의 이론적 작업을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 명명했고, 또 그럴 만했다.
코페르니쿠스가 세상을 뒤집어서 보니 행성의 불규칙한 운동과 밀물과 썰물의 운동이 설명되었던 것처럼, 인식의 근거를 대상에 두지 않고 주관에 두니 학문적으로 불명확하던 형이상학이 엄밀한 학문으로 제자리를 찾아갔다.
칸트가 보기에 합리론도 경험론도 엄밀한 인식론이 되기에는 근거가 부족했다. 합리론은 설명 체계에 빈틈이 없어보였지만 생생하게 살아 있는 세계를 보여주지 못했다. 경험론이 감각 경험을 인식의 근거로 삼는 것은 아주 훌륭해 보였지만 그것만으로는 결국 주관적 관념론 내지 불가지론의 입장을 벗어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흄에 이르러 ‘진리란 없다’는 회의주의로 귀결되었다.
경험론은 외부 대상의 존재나 외부 대상에 있어서 인과관계의 필연적인 연결을 부정한다. 그리고 부정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그 원리를 경험적으로 설명한다. 이러한 철학 원리는 현실 생활에는 유용할 수 있으나 엄밀한 철학을 추구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위기임이 분명했다.
경험은 세계를 인식하는 재료를 인간에게 제공하고 인간의 지성은 선천적인 능력을 이용하여 이 재료를 인식하고 지식을 확장한다. 이로써 칸트는 경험론과 합리론을 종합하는 관념론이라는 거대한 철학의 바다를 완성하게 된 것이다.
칸트는 그러한 형이상학을 바로 세우기 위해 이성의 업무를 제대로 파악하기로 마음먹었다. 칸트는 이성이 하는 업무들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일인 자기인식을 하는 일에 착수하겠다는 포부를 밝힌다. 이를 위해서 하나의 법정을 설치하여 정당한 주장을 펴는 이성은 보호하고 근거 없는 모든 월권에 대해서는 권위자의 명령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성의 영구불변의 법칙에 의해 거절할 수 있도록 요구할 것도 밝힌다. 이 법정이 바로 ‘순수이성비판’이다.(AXII)
칸트는 모든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 모든 제약을 만들어내는 존재로서의 무제약자를 찾는 것이 이성의 사변적 본성이라고 본다. 운동, 변화, 경험의 궁극적 토대를 만들면서도 모든 경험의 저편에 놓여 있는 것을 찾는 것이 인간의 이성이고 이것을 형이상학이라고 한다. 형이상학 안에서는 지금까지 경험의 한계를 넘어 실증할 수 없는 영역에서까지 자신의 진리를 주장하는 논란이 벌어져왔다고 칸트는 주장한다.
칸트는 이성의 비판을 통해서 계몽된 인간의 완성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했던 것 같다. 그것은 칸트가 그의 3대 비판서로 해명하고 싶었던 주제들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1781)에서, 자연세계에서 인간이 무엇을 얼마나 알 수 있는가를 해명하려고 했고, 『실천이성비판』(1788)에서, 자유의지를 가진 도덕적 인간은 어떻게 가능한가를 해명하려 했다. 또 『판단력비판』(1790)을 통해 자연의 세계와 자유의 세계가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를 해명하려 했다. 그런데 이 모든 작업을 엄밀한 학문으로서 완성하기 위하여 경험과 독립하여 보편적일 수 있는 법칙, 즉 순수한 이론 이성을 통해서 해명하려고 했다.
덕이 있는 인간은 객관적으로 누군가 보기에 도덕적이고 선하긴 하지만 도덕을 실천한 인간이 행복하기까지 한다면 그야말로 완전한 최고선을 이룬다는 것이 칸트의 입장이다. 최고선은 덕과 행복의 일치로 성취될 수 있다.
계몽된 인간은 지식, 도덕, 예술을 겸비한 인간일 것이다. 그런 인간에 대한 열망을 칸트는 ‘인간은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인간은 무엇을 행해야만 하는가’, ‘인간은 무엇을 희망해도 좋은가’라는 질문을 화두로 해서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에 써내려가지 않았을까.
2장. 순수이성비판 읽기
칸트는 초월철학을 통해서 대상들이 아니라 대상들에 대한 우리의 인식 방식을 선험적으로 다루는 방식을 초월적이라고 한다. ‘초월적’은 인식 방식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칸트 철학의 큰 틀로 볼 수 있다.
칸트는 선험적 종합 판단을 통해 단순하게 사물을 분해하는 작업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경험과 독립하여 선험적이면서도 지식을 확장하는 형이상학적 판단을 하고자 한다.
1) 선험적 판단, 후험적 판단
선험적인 인식 중에서 경험적인 것이 전혀 섞이지 않은 것을 ‘순수하다’고 한다.(B3)
순수한 인식은 필연적인 선험적 판단이며 경험적 인식은 엄밀한 보편성을 주지 못한다. 한 판단이 엄밀한 보편성을 갖는다고 생각된다면 “어떠한 예외도 가능한 것으로 인정하지 않는”(B4) 제한 없는 보편성을 가져야 한다.
2) 분석적 판단, 종합적 판단
칸트는 술어가 주어의 개념 속에 포함되어 있는 판단을 ‘분석적 판단’이라고 한다.(B10)
종합 판단은 주어에서 주지 못하는 지식이 술어에서 확장된다.
3장. 철학의 이정표
1) 데카르트 연구: 방법서설,성찰 - 르네 데카르트, 최명관 옮김, 창, 2010
데카르트는 서양의 중세를 지나면서 인간 이성에 믿음을 가지고 인간의 이성을 학문의 중심으로 세우려고 했던 근대 철학의 아버지였고, 그 중심에 생각하는 ‘나’를 놓아 인간 이성을 학문의 중심에 둔 철학자이다.
2) 인간오성론 - 존 로크, 이재한 옮김, 다락원, 2009
존 로크(John Locke, 1632~1704) 역시 이 세계를 어떻게 하면 정확하게 알 수 있을까를 고민한 철학자이다.
17세기를 인식론의 시대라고 한다. 그 시작은 로크부터이다
3) 인간이란 무엇인가 - 데이비드 흄, 김성숙 옮김, 동서문화사, 2016
17세기를 인식론의 시대라고 한다. 그 시작은 로크부터이다.
4) 사회계약론 - 장 자크 루소, 김영욱 옮김, 후마니타스, 2022
5) 모나드론 외 -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 배선복 옮김, 책세상, 2019
6) 정신현상학 -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김준수 옮김, 아카넷, 2022
'취미(樂) > 나의도서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청소년을 위한 국부론 (3) | 2024.10.29 |
---|---|
나는 주식 대신 달러를 산다 (8) | 2024.10.01 |
직장인도 부자가 될 수 있는 월급 세팅법 (2) | 2024.09.29 |
가짜 노동 (0) | 2024.08.19 |
다산의 마지막 질문 (0) | 2024.03.2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