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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樂)/나의도서관

청소년을 위한 국부론

by ㅋㅕㅋㅕㅇㅣ 2024. 10. 29.

‘보수를 받는다고 해서 모든 노동이 새로운 부를 생산하는 것은 아니다'

스미스는 국왕과 관리와 목사와 금리생활자는 새로운 부를 생산하지 않으며, 공업과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노동만이 새로운 부를 생산한다고 규정함으로써, 생산적 노동을 증가시켜야 국부가 증진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국부론》이 1700년대에 유행하던 중상주의적 국가 개입(예를 들어 수입 규제, 수출 장려, 독점적 무역회사의 허가, 식민지 건설)을 곳곳에서 철저하게 비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중상주의에서는 무역수지가 흑자(수출이 수입보다 많은 것)를 달성하여 국내에 보유하는 금과 은의 양을 증가시키는 것이 국부를 증가시키는 길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스미스는 금은 보유량의 증가가 토지와 노동의 연간 생산물(스미스가 말하는 국부)을 증대시키지 않는다는 것을 설득하기 위해, 당시 라틴 아메리카 식민지로부터 금은을 대량 수탈한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국내 경제가 망하고 있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스미스는 절대왕정의 중상주의 정책이 일부 상인과 제조업자의 이익만 증대시킬 뿐이고, 국민의 부인 국부는 감소시킨다는 것을 이론과 실증에 의해 증명하였습니다.

  자유경쟁이 독점이나 배타적 특권보다 사회의 이익에 훨씬 더 봉사한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하여, 스미스는 독점적인 동인도회사와 자유경쟁적인 개인모험상인을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스미스는 동인도회사가 사실상 영국 정부를 대신하여 인도를 지배하고 있는데, 인도 국민을 희생시키면서 투자자들의 개인적인 부를 증가시키고 영국 정부에게는 인도에 대한 재정 지출을 증가시키는 손실을 줄 뿐이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국부론》을 읽을 때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은, 당시에는 스코틀랜드에서 아직 산업혁명이 진전되지 않았으므로 기계를 사용하는 공장이 거의 없었고, 따라서 생산이 도구를 사용하는 수공업 수준인 ‘가내공업’이나 한 건물에 다수의 수공업자를 임금노동자로 고용한 ‘공장제 수공업(매뉴팩처)’에서 행해졌다는 점입니다. 이 때문에 《국부론》에는 자본가와 임금노동자가 분명하게 구별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당시에는 공장주인 자본가도 가족이나 임금노동자와 함께 일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스미스는 생산기술이 빨리 발달한다거나 새로운 생산방법을 끊임없이 도입한다는 개념을 가지지도 못했습니다. 따라서 자본이 축적되면 될수록 새로운 노동절약형 기계가 도입되기 때문에 실업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생각을, 스미스는 한 번도 가지지 못한 것입니다.

경제학의 목적을 규정하면, 자연히 다음과 같은 과제들을 해결해야만 합니다.
 
첫 번째, ‘국민을 부유하게 하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가?
두 번째, 국민을 부유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세 번째, 기존의 경제학설은 왜 국민을 부유하게 하는 데 실패했는가?
 
사실상 이 세 과제에 대답하는 것이 《국부론》의 전체 내용입니다.



  분업의 진전에 따라 노동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의 거의 대부분, 즉 국민들 대부분의 직무는 몇 가지의 극히 단순한 작업(흔히 하나 또는 두 가지 작업)으로 한정된다. 그리고 대다수 사람들의 이해력은 필연적으로 그들의 일상적인 직업에 의해 형성된다.
자신의 일생을 몇 가지 단순한 작업에 바치는 사람들은, 그리고 그것의 결과물도 항상 같거나 거의 같은 경우에는, 예기치 못한 어려움을 제거할 방법을 발견하기 위해 그의 이해력을 발휘하거나 그의 창조력을 행사할 기회를 가질 수 없다. 따라서 그는 그런 노력을 하는 습관을 자연히 상실하게 되고, 일반적으로 인간으로서 가장 둔해지고 무지해진다. 그들의 정신은 마비 상태에 빠져서 어떤 합리적인 대화를 이해하거나 그런 대화에 참여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어떤 관대하고 고상하고 온화한 감정을 느낄 수 없게 되며, 따라서 사생활 방면의 수많은 일상적 의무들에 대해서도 정당한 판단을 내릴 수 없게 된다.

스미스가 주장한대로 상품 가치의 구성 부분은 변했지만, 총 가치는 변함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노동자의 10시간 노동이 자기의 임금과 자본가의 이윤과 지주의 지대를 창출하므로, 노동자는 2시간의 노동으로 자기의 임금을 창조하고, 3시간의 노동으로 지주의 지대를 창조하며, 나머지 5시간의 노동으로 자본가의 이윤을 창조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잉여가치가 이윤과 지대의 원천이라는 ‘잉여가치론’을 마르크스가 발견하여, 부르주아경제학의 이윤론과 지대론을 우스개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부르주아경제학에서는 ‘이윤은 소득을 소비하지 않고 저축하느라고 애를 쓴 자본가의 절욕 abstinence(욕망을 억제함)에 대한 보수이거나, 자본가가 위험을 무릅쓰고 투자한 것에 대한 보상’이라고 떠들지만, 절욕이나 위험이 어떻게 이윤을 창조하는지를 과학적으로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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