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취미(樂)/나의도서관

경제인의 종말

by ㅋㅕㅋㅕㅇㅣ 2023. 7. 4.

★★★ 

 

책을 읽게 된 계기

경영 분야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인 피터 드러커의 책을 드디어 읽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해 피터 드러커가 세상에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고 하여 흥미롭게 읽기 시작했다.


책 내용 요약

p18

사회적으로 대량생산 방식은 외견상 완벽한 독점으로 보인다.

자본주의 그 자체에 대한 믿음을 유지하려면 오직 '자유경쟁'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중하층과 상류 노동 계층에게 '자유경쟁'의 의미는 효율성이 조금이라도 증가하면 기회의 평등과 사회적 지위의 평등 수준이 동시에 향상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약속의 이행이 불가능해지자 중하층 계급의 사람들은 자본주의에 대해 등을 돌리고 만다. 포드가 독점 생산으로 싼 가격의 제품생산에 성공한 그날 이후부터 경제적 발전은 불가피하게 보다 더 큰 불평등을 초래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포드는 자본주의의 성공이자 종말을 상징한다.

자본가들과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경제의 확대와 성장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경제의 확대와 성장은 오직 사회적 경제적 평등이라는 사회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다. 경제 발전은 천년왕국을 지상에 세운다는 약속을 실천하는 것이므로,  사회의 모든 에너지는 경제적 목적의 증진에 집중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이다. 따라서 사회적 목적이 없으면 자본주의는 아무런 의미도 없으며, 정당화될 수 도 없을 뿐 아니라 존립할 가능성도 없다.

 

:: 계급없는 사회를 통해 불평등을 해결하겠다고 등장한 사회주의

 

사회적 질서와 이념으로서 자본주의는 결제 발전이 자유평등 사회의 구성원에게 자유와 평등을 제공한다는 믿음을 표현한 것이다. 사회주의는 그런 사회를 사적 이윤의 철폐로 이룩할 수 있다고 기대한다. 사회적 목적이 중요하다는 것과 자본주의에 대한 믿음이 어느 정도 파괴되었는지 증명하는 가장 크고도 결정적인 증거는 유럽의 노동계층이 칼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 가 주장하는 '대중의 빈곤화'라는 명제를 복음의 진리처럼 받아들인 데에 있다. 이 명제가 틀렸다는 것이 사실로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의 주장에 대한 신뢰를 전혀 깨뜨리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명제가 의도한 것은 노동자로 하여금 자신은 점점 더 불평등해지고 또한 프롤레타리아계급에서 벗어나 상류 게급으로 이동할 기회가 점점 줄어든다는 것을 느끼도록 하려는 것뿐이었기 때문이다.

...

생산 시설의 완벽한 사회화와 함께 특권을 가진 중간 관리 계층의 수와 규모가 너무도 엄청나게 증가하여 최하층의 비숙련 노동자들을 수적으로 압도하게 된다. 그들은 비숙련 노동자들의 이름으로 그리고 명목상으로 비숙련 노동자들의 이익을 위해, 사회적 경제적 조직을 계획, 설계, 감독, 관리한다. 새로운 계급이 등장하고 고착되어 계급없는 사회가 아니라 새로운 계급사회가 되는 것이다.

 

p23

::제1차 세계대전과 대공황의 의미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이념에 대한 신뢰의 붕괴는 제1차 세계대전과 대공황을 통해 개인의 실제적인 경험의 차원으로 전환되었다. 이런 대재난들은 개인으로 하여금 기존의 제도, 기관, 그리고 원칙들을 불변의 자연법칙으로 받아들이도록 했던 일상생활을 파괴하고 말았다.

 

p26

자유라는 개념 그 자체가 근거를 잃었고 또 가치를 상실했다. 경제적 자유가 평등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개인이 자신의 최대 경제적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것, 즉 경제적 자유의 본질은 사회적 가치를 상실했다.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인가 하는 것과는 관계없이, 그것이 평등을 증진할 수 없으므로 대중은 경제적 행위 그 자체를 사회적으로 유익한 것으로 간주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되자 실업의 위협, 공황이 도래할 위험, 또는 경제적 희생의 위험이 보다 덜 절박하게 된다는 약속만 하면, 경제적 자유의 축소 또는 포기가 수용되거나 아니면 심지어 환영받기까지 했다. 대중은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전통적 사회를 포기하든지 아니면 악마를 퇴치할 시도를 포기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체주의의 전략: 구체제의 모습은 유지하고 실체(자유와 평등)는 제거한다.

 

이런 모순이 바로 파시즘이 출현하게 되는 진정한 이유이다.

 

p33

전체주의 파시즘이 목적이 있는 듯 보여 질 수 있는, 그리고 파시즘 스스로 존재 이유를 정당화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파시즘이 만들어낸 악마들과의 '성전'을 치를 대뿐이다.

 

p44

(과거 전쟁의 역사를 보면) 결정적인 전쟁에서 승리하는 사람은 비록 그가 전장에서는 취약하더라도 항상 도덕적 사회적으로 더 강항 사람이었다.

 

p71

::전체주의는 과거를 거부하고 단절한다.

 

파시즘은 그 이전의 어떤 정치적 운동보다도 과거에 대한 거부가 더 심한데, 그 이유는 파시즘이 그것(과거와의 단절)을 자신의 주요 강령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파시즘은 이념과 경향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둘 다를 동시에 거부한다. 파시즘은 반진보적이고 또한 반보수적이다. 반종교적이고 반무신론적이다. 반자본주의적이고 반사회주의적이다. 전쟁을 반대하지만 평화도 거부한다. 대기업을 거부하지만 또한 수공업 장인이 운영하는 소규모 공장이나 가게도 반대하는데, 심지어 그것들을 사회에 불필요한 존재로 간주한다. 

 

나치의 모든 프로파간다의 유도동기는 '게르만 민족'을 강조하는 것도 아니고, 나치즘의 약속이나 정복, 그리고 성취도 아니었다. 그것은 오직 반유대주의, 히틀러가 등장하기 이전의 '잃어버린 14년(1981년 11월 11일 제1차 세계대전 패전에서 1933년 1월 30일 나치의 정권 장악까지의 기간) 에 대한 공격, 그리고 독일에 대한 외국의 음모에 대한 것이었다.

 

수년전 나는 한 나치 선동가가 열광적으로 환영하는 농부들 집회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하는 것을 들었다. "우리는 빵 값이 내리기를 원하지 않으며, 또한 빵 값이 오르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빵 값이 그대로 있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나치가 책정하는 빵 값이다." 이 말은 그 후 내가 들은 어느 말보다도 파시즘을 더 잘 설명해주었다.

 

p76

3. 불가사의한 대중심리

 

::거짓말이 파시즘의 매력이다 - 대중은 파시즘의 거짓말에 속은 것이 아니다.

 


느낀 점 및 생각

나는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역사에 관심이 전혀 없었다. 현재에도 관심이 없었다. 

그저 내 눈 앞에 펼쳐진 과제에만 관심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세상에서 겉돌았고 이유를 알지 못한 체 산더미처럼 해야할 일 속에 파뭍혀 지냈다.

그런데 점점 세상에 대해 사람들의 행동에 대해 궁금하고 이유를 알고 싶은 순간들이 많아지고 있다.

세상에 눈을 뜬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20세기 말의 파란만장한 역사와 그 안에 내포되어있던 여러가지 사람들의 생각들을 엿볼 수 있어 너무 좋았다.

 


책을 읽고 변화된 점

사회,역사는 내게 암기과목에 지나지 않았는데, 이제 내가 놓쳤던 무수히 많은 이야기들을 찾아보고 싶다.

'취미(樂) > 나의도서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정하다는 착각  (0) 2023.11.05
구술문화와 문자문화  (0) 2023.09.26
다시, 초등 고전읽기 혁명  (0) 2023.03.23
공부하는 힘  (0) 2023.01.25
매일 읽는 엄마 한 뼘 자라는 아이  (0) 2023.01.25

댓글